픽사 애니메이션 ‘코코’는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토록 따뜻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해준 작품이었다.
망자의 날,
산 사람과 죽은 자가 다시 만나는 그 하루.
그 하루를 위해 후손들은 조상의 사진을 제단에 올리고,
음식과 꽃을 준비하며
기억의 끈을 이어간다.
기억이 끊기면, 영혼도 사라진다는 세계.
그 슬프고 아름다운 세계는
결국 나에게 한 가지를 속삭였다.
"넌 잊지 않고 있니?"
초등학교 2학년, 첫 이별을 배우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던 친할머니였다.
매일 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던 손.
그 손길은 지금도 생생하다.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날,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죽음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나는
산소에 나무가 자라면
그 나무를 타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면,
할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 나무가 내 마음 안 어딘가에 자라나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의 온기를 다시 만나고 싶은 그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짙어진다.
아버지를 미워했던 그 시간, 지금은 아프게 다가온다
10년 전 겨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었다.
주식 실패로 많은 걸 잃으셨고,
가족 안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슬픔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고,
상처를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말없이 등을 돌렸고,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 미움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었다는 걸.
나는 아버지를 무척 사랑하고 있었고,
그만큼 실망했기에 더 상처받았던 것이다.
내가 웃을 때,
고집을 부릴 때,
문득 거울 속에서 아버지의 표정을 마주친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
그래서 더 그립고, 더 미안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지금도, 여전히.
내 하나뿐인 동생, 그날 이후 나는 달라졌다
2021년 여름.
한 통의 전화로
내 세상이 무너졌다.
내 동생이 자전거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게 오빠 같기도 했고,
친구 같기도 했다.
든든했고,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해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런 예고 없이 사라졌다.
죽음이란 이렇게 쉽게 오고,
이렇게 모든 걸 앗아가는 것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코코’에서처럼,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는 한 그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
마치 내게 들려주는 위로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를 기억한다.
그 웃음, 그 눈빛, 그 따뜻함.
내가 기억하는 한
그는 내 안에서 살아있다.
19년을 함께한 가족, 내 자식 같은 똥판이
그리고
내 삶의 긴 시간을 함께한 존재가 있다.
똥판이.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주고,
나의 곁을 지켜줬던 존재였다.
그 아이는
내가 기쁘든 슬프든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봤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 눈빛 하나면 충분했다.
나는 똥판이를
반려견이 아니라
내 자식처럼 키웠다.
그 아이는
19년이라는 시간을 내 곁에서 살아냈고,
결국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그날 이후
내 삶은 유난히 조용해졌다.
발소리 하나 없는 집이
이토록 낯설고 슬픈 공간이 될 줄은 몰랐다.
그리움은 점점 깊어지고
나는 똥판이의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
"잘 있니?
엄마는 아직도 네가 그리워."
코코가 내게 남긴 이야기
‘코코’의 미겔은
망자의 날, 죽은 자들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의 조상을 만나고
한때는 원망했던 가족의 진심을 깨닫게 된다.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은
망자들이 사진이 제단에서 사라지고
이승에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면
저승에서도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질까 봐
소름이 돋았고,
반대로 내가 잊는다면
그 사람도 사라질까 봐
마음이 아려왔다.
그래서 다짐했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나는 매일, 마음속 제단 앞에 선다
나는 매일 마음속에
작은 제단 하나를 세운다.
그곳에는
친할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고,
동생이 있고,
똥판이가 있다.
나는 그 앞에서 속삭인다.
"기억해줘.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내가 지금도 너희를 잊지 않았다는 걸."
기억이 이어지는 한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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